비로사(毘盧寺)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소백산 비로봉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신문왕 때 승려 진정이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창건 설화에 따르면 의상이 제자인 진정의 홀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현 비로사 자리로 추정되는 소백산 추동에 초가를 짓고 《화엄경》을 강의하였고, 90일 동안 계속된 이 강의가 끝나자 진정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하늘에서 환생했다고 말했다. 신라 시대에는 소백산사로 불렸다. 한편, 신라 말에 이 절을 중창되고 고승 진공이 머물렀는데, 고려 태조가 이 곳에 와서 진공의 법문을 듣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태조 20년에 진공이 사망하자 태조가 직접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보법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었다. 이때 최언위가 글을 지어 세운 진공대사 탑비가 남아 있어 영주시 지방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중창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승병이 거점으로 활용하다가 전소되어 새로 지어야 했고, 1909년에도 법당 외의 건물이 모두 불타 남아 있는 건물은 모두 현대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996호인 아미타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을 보유하고 있다. 9세기 신라 후기의 화엄불교 미술 특징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이상은 Daum의 위키백과에 옮긴 글이다)
비로사 일주문이다 보물이 모셔져 있는 적광전을 가기 위해선 이곳을 지나야한다 (물론 차도도 있지만....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주문을 지나 왼쪽편에 서 있는 당간지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 졌으며 높이는 420cm이다. 당간은 절에서 불교의식이 있을때 불(佛), 보살(菩薩)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깃대를 고정시켜주기 주기 위해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리 한다. 당간지주의 웅장한 규모로 보아 당시의 사세(寺勢)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
진공대사 보법탑비는 신라말 - 고쳐초 승려인 진공대사(855-937)의 탑비다 진공대사는 신라왕실 계통인 확종의 아들로 속성은 김씨이며, 어머니는 설씨이다. 가야산에 들어가 선융에게서 계를 받아 승려가 되고, 신라 경문왕 14년(874년) 가야산 수도원에서 구족계(具足戒 : 승려가 지켜야 할 계)를 받고, 불경을 연구하였다. 대사의 시호(諡號)는 진공(眞空)이며 탑호(塔號)는 보법(普法)이다.
범종각
月 明 樓 : 주불전인 적광전을 가기 위해선 이곳을 지나야 한다
寶 蓮 堂 : 종무소와 공양간 등 요사채
적광전(寂光殿) : 보물 996-1호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보물 996-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셔둔 불전이다
보물 996-1호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보물 996-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통일 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진공대사비문(眞空大師碑文)에 따르면 비로사는 신라시대 말 고려시대 초의 명승이던 진공대사가 고쳐지은 사찰이다. 아미타불의 높이는 113cm이며, 비로자나불의 높이는 117.5cm이다. 원래는 불상 뒤 광배(光背 : 불상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 뒤에 표현한 장식)와 불상의 받침(臺座)을 모두 갖추었으나 현재는 팔각의 연꽃 모양 바닥 돌 위에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의 머리는 나발(螺髮 : 나선형의 머리카락)에 큼직하게 솟아오른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처럼 두드러진 모양)가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은 가름하나 원만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 : 양발을 반대쪽 다리 위에 놓은 자세)를 하고 두 손을 그 위에 놓은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좌상은 어깨와 가슴이 단정하며, 둥근 얼굴에 목이 굵고 코와 입이 크며 귀가 짧은 점 등이 사실주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두 불상의 조각 양식은 같으며, 제작 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 된다.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이 함께있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 화엄불교의 한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적광전에는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후불탱화는 결가부좌(結跏趺坐 : 양발을 반대쪽 다리 위에 놓은 자세)한 아미타불과 좌우에 서있는 광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화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상,하단 여백에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조그맣게 배치되어 있다. 화면이 다소 어둡고 부분적인 훼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파스텔 톤의 화사한 채색, 부처님과 보살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도안화된 화사한 꽃과 풀 문양, 특히 지장보살의 옷 끝자락 등에는 금니(金泥 : 금박가루)로 칠한 꽃 모양이 돋보인다. 1832년 만들어진 아미타불 후불탱화로서, 아미타삼존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가 묘사된 특징과 함께 화사한 채색, 장식적인 문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미타후불탱화 : 법당안 아미타 부처님을 모셔놓은 뒤쪽에 걸어놓은 불교 그림"
(설명문에서 발췌한 내용 임)
2013년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 촬영.
적광전 앞 석탑 : 여려 종류의 석재들로 쌓아놓은 탑으로 의미가 깊고 클것으로 사료되나 유래나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반야(般若) : 불교에서 모든 사물의 본래의 양상을 이해하고 불법(佛法)의 진실된 모습을 파악하는 지성(知性) 작용 (스님들의 修練室)
나한전 : 나한전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이룬 성인을 모신 전각입니다.
흔히 깨달은 성인을 아라한이라고 부르는데, 나한은 이를 줄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나한전을 보면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고, 그 옆으로 16명의 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는 500명의 나한이 있는데, 이는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열자 500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제자들을 모신 것이지요.
나한의 모습을 보면 웃거나 졸기도 하고, 등을 긁기도 하는 등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한이 복을 주고 소원을 이뤄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특히 고려시대에 나한신앙이 발달했답니다. [불교신문 2348호/ 8월1일자]
앞 건물이 望月堂. 뒤 멀리 보이는 건물이 三聖閣이다. (바로 보이는 잔디밭 비탈에는 매년 2월말이나 3월초 사이에 노란 복수초가 소백산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망월당 (望月堂)
삼성각(三聖閣) : 독성각·산신각·칠성각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사진은 일주문을 지나 배치된 순서로 촬영 등재한 것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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